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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아트: 미디어 아트의 눈으로 게임을 보다. | ![]() |
2006.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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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택 | 아트센터 나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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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몰입- 게임은 무엇이 다른가?
게임 엔진은 두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 집니다. 하나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이 뛰노는 세계를 보여주는 부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캐릭터들 서로 간의 관계를 그리고 이들의 캐릭터들이 어떠한 논리를 가지고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정하는 관점의 부분입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서 플레이어는 게임의 경험 안에서 캐릭터가 되고 그 아이덴티티로 어떤 세계를 경험합니다. 그가 경험하는 세계는 회화나 조각처럼 작품으로 완결된 오브젝트도 아니고 영화처럼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스토리텔링도 아닙니다. 게임이 경험되는 세계는 다만 놀이의 마당으로서 가능성의 장으로서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이 세계를 디자인한 아티스트의 독특한 시각과 만나면서 동시에 다시 이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렇게 세계를 만나고 다시 그 세계를 창조합니다. 이 때에 느껴지는 독특한 세계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통제하는 지배의 느낌은 게임만의 고유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경험이 게임이 우리에게 전하는 재미라고 하는 신비한 핵심의 하나입니다.
게임과 예술이 다른 점은 예술 작품들이 작가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답을 제시하는 형태라면 게임은 아티스트가 창조한 놀이의 장 안에서 가능한 답들을 플레이어들이 함께 탐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게임의 전제 중 하나인 상호작용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상호작용을 구현하는 것은 미디어 아트에서 결코 낯선 일은 아니지만 게임이 구현하는 상호작용성의 지향과 미디어 아트의 그것은 항상 거리가 있어왔습니다.
미디어 아트의 상호 작용성은 대중들을 작품구현에 참여시키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게임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게임에서 기대되는 재미와 몰입의 체험은 심심한 기본적인 상호작용을 항상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내가 작용하니 움직이는 정도의 상호작용은 게임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작동의 전제 조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버튼 누르니 혹은 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드니 화면 변하더라 정도의 게임을 재미있다고 할 게임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습니다.
게임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어떤 의미를 유저에게 주는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전사가 되어 몬스터를 많이 잡아 영웅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는 상호 작용을 했는가? 나는 샌 앤드로 뒷골목을 누비며 잘나가는 갱스터가 되어 총맞아 죽을 때까지 부서질 듯 살아보는 상호작용을 했는가? 등의 구체적으로 플레이어를 변화시키고 세계와 관계를 재설정하는 상호작용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체험은 특정한 의미들의 체계들을 플레이어에게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로 플레이어의 강박적인 몰입을 유도하려는 게임들은 이러한 의미체계를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게 하고 합니다. 일단 동의하면 플레이어는 그 게임 세계의 가치들을 추구하는 데에 빠져들게 됩니다. 사실은 픽셀의 조합인 이미지를 귀중한 아이템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저 클릭의 반복뿐인 행위를 영웅적인 투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게임 중독을 유발하는 기제가 이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게임이 플레이어의 주체적 의식의 성장에 관심을 두게 된다면 게임의 가능성은 훨씬 다른 장을 열게 될 것입니다. 게임이 전달하는 의미체계를 명시적으로 느끼게 하고 플레이어가 그 세계의 변화에 더 많이 기여하게 한다면 게임은 새로운 성장의 도구가 될 것이며, 또한 여전히 즐거운 그러나 더 맑은 정신의 고양을 가져오는 몰입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게임계에서 널리 이야기되는 몰입의 경험을 불러오는 상호작용입니다. 몰입의 핵심은 의미체계의 전달입니다.
게임은 이런 맥락에서 플레이어게 암암리에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누구냐?(혹은 누구라고 결정하는가?) 그리고 여기는 어디인가?(혹은 어디이기를 바라는가?) 입니다. 이 질문은 보통 강제적으로 대답하게 되어 있고 대답들이 무척 제한적인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은폐됩니다. 가장 많은 플레이어들을 사로잡고 있는 온라인 알피지를 보십시오. 플레이어는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전사다. 마법사다. 혹은 오크다. 그리고 여기는 중간계이다. 혹은 미래의 도시다. 이렇게 한정된 대답들 밖에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은 이미 대답이 주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나 자신의 세계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관심과 가치관을 결정적으로 축소시키고 맙니다.
이러한 제한적인 상황을 돌파하려는 시도는 일부는 게임 산업계 내부에서 또 다른 일부는 미디어 아트 쪽에서 시도 되고 있습니다. 미디어 아트가 진화해가는 한 형태로서 게임 아트가 이런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왔는지는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입니다.<o:p></o:p>
미디어 아트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임 아트는 주로 상업적인 게임들을 변형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거나 게임이 야기하는 사회적 현상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아왔습니다. 전자의 작업으로 널리 기억되는 작품은 <수퍼 마리오>를 해킹하여 구름만 떠다니는 익살 맞은 화면을 보여주는 Cory Arcangel의 <수퍼 마리오 구름 v2k3>, <마라톤 인피니티>를 해킹하여 주방 용품과 야채들의 슈팅게임을 보여주는 Leon Cmelewski 의 <키친><bio-tek kitchen=""></bio-tek>등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전형적인 대전 게임의 캐릭터를 사회적인 이슈를 암시하는 평범한 캐릭터들로 교체하여 보여주는 Julian Alma와 Laurent Hart의 <보더게임><border land=""></border>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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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상업적인 게임들이 다루지 않는 세계의 설정을 불러 옴으로써 플레이어의 선택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러한 첫 번째 선택이 지금까지의 미디어 아트들이 게임을 수용해 온 방식들입니다. 그들은 전형적인 액션 게임의 캐릭터를 이민자 지역의 인물들로 바꾸거나 일인칭 슈팅게임의 배경을 감옥에서 부엌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그저 살짝 재치 있는 게임에 관한 농담으로 들릴 뿐입니다. 게임 해킹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첫 번째의 접근법은 때로 의미심장한 암시를 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게임의 옷을 살짝 갈아 입힌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게임에 대해서 말해보자 입니다. 게임에 대한 대화를 작품으로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게임이 포함하는 세계관 자체를 대안적으로 제시하는 게임입니다. 이 경우에 서부터는 게임 제작을 예술작품 제작의 관점으로 재설정하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죽이거나 살인범을 찾는 대신 사회적인 계층 구조를 역류해 본다 던지 혹은 관료가 되어 보는 체험을 해보는 등 대안적인 행위들을 하게 됩니다. 미디어 아트의 내부에서는 콜호즈 그룹이 만드는 게임 아트 등이 이 범주에 속할 것이며 게임 제작 소그룹들이 만들어 내는 독립게임들 중에서 이 부류에 속하는 게임들이 드물게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 방법의 한계는 여전히 이들 게임 아트가 상업적 게임의 대안을 만드는 선에서 머물 뿐 아직 미디어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게임의 체험 방식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여 그저 소수자 취향의 게임에 머무는 아쉬움이 있기 쉽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미디어로서의 게임의 혁신과 결합하는 게임 아트입니다. 이 경우는 게임이 플레이 되는 환경과 게임의 승패의 방식 그리고 이 승패의 방식이 향유되고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는 의미의 유통까지를 게임의 영역으로 포괄합니다. 이 범주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그리 의미 있는 성취는 없었지만 머쉬마나 최근 소니쉬마 같은 게임 엔진을 예술의 툴로 확장하려는 시도로부터 로케이션 베이스 게임의 여러 사례들이 포함되며 토시오 이와이와 같은 퍼포먼스 인스트루먼트 방향에서의 시도도 꾸준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이 분야의 역량의 향상은 오픈 소스 게임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근래까지 오픈 소스 툴의 진화와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이 이루어지는 오픈 소스 게임은 기술 공유와 혁신을 이루어 간다는 점에서 게임의 미디어로서 기술적인 근간을 다루는 접근법이라고 할만합니다.
<collectic></collectic><collectic></collectic><collectic></collectic><collectic></collectic><collectic></collectic>은 Jonas Hielscher 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용으로 만든 무선 로컬 테트웍을 활용하는 게임으로 위치 기반 게임의 최근 사례이다.
올해에 처음으로 시작 된 런던 게임 페스티벌은 세계 3대 게임쇼와의 차별화를 위하여 여러 시도를 하였는데 그 중 하나는 원닷지로 런던과 연대하여 미디어 아트와 게임 혹은 실험적 게임들에게 더 많은 체계적인 소개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상되기는 이와 같이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세 번째 범주의 게임 아트가 더욱 활발히 제작되고 구체적인 모습들을 보여갈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출발을 지켜보는 마음에는 즐거운 설레임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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