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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title 크리에이티브의 조건 date 2006.11.27
file 노소영 | 아트센터 나비 디렉터 | hit 678

크리에이티브에 관해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좀 난감했다. 마치 사랑에 관한 글을 쓰라는 것과 같이 주제가 너무 광범위하고 또한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니, 주관적 개인적 경험인 사랑과는 달리 크리에이티브는 이미 사회적 정치적으로 구호화 되어 있는 바, 아트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크리에이티브 관이랄까 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좀 생각을 늘어 놓기로 했다. 추상적인 논의나 뻔한 이야기는 지면 사정상 피하고 싶어서 내가 만나 본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을 통해 도출한 크리에이티브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소위 크리에이티브는 어떤 추상적 개념이나 기준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 내지 행태에 귀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작품이란 단지 그 행위나 사고의 결과물일 뿐이다.

조건 1. 크리에이티브 피플, 그들에겐 자유함이 있다.

기존의 사고 방식이나 제도적 틀로부터 대체로 자유롭다. 물론 그 자유도에 있어 개인차는 있지만, 어떤 연유에 의해서건 이들은 자유를 스스로 획득하였고 그것을 누리며 산다. 여기서 획득하였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값없이 얻어진 자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습이나 사회적인 제도는 그리 녹녹하게 우리를, 특히나 크리에이티브 피플과 같이 예민한 종족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개인적 투쟁에 의해 피 흘리며 얻어진 자유는 머리로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는 자유이다. 진정 크리에이티브 피플은 이 세상 무엇과도 자유를 맞바꾸려 하지 않는다.

조건 2. 그들에게는 남다른 자신감이 있다.

자유함의 바탕은 자신감이 아닐까. 소수의 선택 받은 인간은 자신의 어떤 면에 대한 맹목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다른 면에 대해서는 만만찮은 콤플렉스도 존재하겠지만, 결국에는 그 콤플렉스들을 상쇄하고도 남는 자신감이 있기에 크리에이티브가 가능할 것이다. 추측컨대 아마도 유아기 때의 어머니의 태도와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유전자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이들에게는 세상을 남들과 다르게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이는 남들과 달라도 불안해 하지 않는 배짱 탓이다.

조건 3. 나름 근면 성실하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근면 성실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일에 관해서는 자신의 방식으로 탁월한 성실성을 발휘한다. 부지런함도 못지 않다. 남들이 귀찮아 하거나 쓸데 없다고 치부하는 일들에 엄청난 정성을 쏟아 해낸다. 이 근면 성실성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신의 일과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위대한 긍정과 애정이 있다. 이는 곧 이 세상에 대한 긍정으로 통한다.

조건 2 3은 조건 1의 필요 조건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근면 성실 없이는 자유함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조건 1의 자유함은 거저 얻어지는 자유분방과는 다른 의미이다. 수련과 투쟁의 결과이다. 그 바탕에는 물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위대한 긍정이 있다. 나의 경우, 예술 센터를 운영하면서 개인적으로 얻는 가장 큰 기쁨은 이런 크리에이티브 피플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들의 자유함과 성실한 인간성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이 나와 같은 범인에게도 전이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면 누군들 크리에이티브 피플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신은 누구에게나 이 특권을 부여한 것 같지는 않다. 근면 성실함과 자신감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자유함에 이르거나 크리에이티브 피플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기질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두뇌의 구조가 다른 것일까, 창의적인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기존의 것과는 다르게 배열 조합해보고자 하는 욕망이 다른 어떤 욕망보다도 더 강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예수라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가장 창의적인 인물이다. 그 정도의 반열에 오르진 못하더라도 작가, 혁명가, 시인, 사회 운동가, 사업가 등 여러 분야의 수 많은 크리에이티브 피플들이 우리 인생의 불을 밝혀 주고 있다.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삶이 더 풍요로울 수 있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피플을 이야기하다 좀 오버한 것 같다. 이제는 미시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 요사이 디지털 시대의 크리에이티브에 관해서 말할 때 컨버젼스라는 말을 자주 꺼낸다. 컨버젼스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모든 인위적인 장르들, 경계들, 영역들을 허물어 새로이 세상과 경험을 구성하자는 것이 아닌가. 디지털 컨버젼스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세계로부터 정신과 육체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계들로부터 자유롭자는 것이다. 네트웍 냉장고로부터 MP3가 내장된 핸드폰까지 이제는 모든 기능이 융합되고 복합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 오고 있다. 아니, 오고 있다고 야단들이다. 커피 한잔을 마셔도 생산자가 누구인지, 그가 사는 환경이나 그의 일상까지도, 우리가 알고 싶건 아니건, 우리 코앞에 들이 민다.

소위 컨버젼스 시대의 크리에이티브는 어떠한 크리에이티브일까? 우선 소통하는 크리에이티브일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소통이 없으면 컨버젼스도 없다. 그러나 이 소통의 방식은 그 이전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일방적 혹은 교조적인 소통은 이제 먹히지 않고 수평적, 다원적이며 또한 다층적인 소통이다. 이는 한편으론 복잡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무엇에건 질서와 결론을 가져야 한다는 근대적 사고를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새로운 소통의 양상은 우리에게 무한한 융통성과 자유의 가능성을 줄 수 있다. 소위 Web 2.0식의 크리에이티브는 닫힌 세계가 아닌 열린 크리에이티브이며, 설교나 강의식이 아닌 대화식의 소통을 통해 나오는 일종의 민주적 크리에이티브이다. 나를 인정하듯이 타인을 인정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대할 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독불장군 식의 크리에이티브는 더 이상 이 시대가 요구하는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겸손한 자세로 세상과 소통하기는 크리에이티브 피플의 네 번째 조건이 된다. 근면 성실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함에서 생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과 겸손하게 소통할 때 이 세대가 요구하는 크리에이티브가 탄생된다고 감히 말해 본다.

 

*** 이 글은 [w.e.b.]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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