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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모범생이 왜 사회에 나가 실패하는가 | ![]() |
2009.0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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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 | 아트센터나비 디렉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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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에서 글로벌인재포럼(Global HR Forum)이 열렸다. 한국에서 열리는 태반의 국제 행사들이 그렇듯 지명도 높은 인사들을 초청해 뻔한 이야기를 듣다가 끝나는가 했다. 소위 이름값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가장 생산적인 시기를 10년 이상 지난 사람들이라 현재나 가까운 미래의 첨예한 문제들에 관해선 아무래도 현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포럼에서 적어도 한 강사의 말은 귀담아들을 만했다.
교육 컨설턴트이며 연구가인 테드 칸(Ted Kahn)이었다. 1970년대 초부터 컴퓨터공학·심리학·교육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해 온 그의 일관된 관심은 사람이 어떻게 잘 배울 수 있느냐였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던 사람들이 막상 사회에 나가선 왜 기대만큼의 성과를 못 내는지, 학교 공부와 사회 학습의 차이를 수년간 다각도로 연구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규 교육은 산업 사회의 패러다임으로, 분업화·전문화된 지식을 전달·전수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막상 사회로 나가 현실 문제와 맞부닥쳤을 때는 부분에 앞서 전체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즉 다양한 지식과 정보의 통합을 요하는 것이다. 사회에서의 학습은 이러한 통합 과정을 익히는 것이다. 통합을 잘 습득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하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정규 교육과정이 크게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칸의 주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뼈아프게 공감할 부분이다. 지식의 전문화를 가져온 근대의 비판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는 근대에 앞서 전(前)근대적 요소도 현저하다. 주입식 교육이 대표적이다.
통합이 중심이 되는 사회적인 학습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칸은 세 가지 필수적인 능력을 꼽았다. 바로 창의성(Crea-tivity), 소통 능력(Communication), 공동체 지향성(Community)이다. 첫 번째 자질인 창의성은 문제를 박스 밖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새로운 연관 관계를 맺기도 하고 기존의 관련성을 해체하기도 한다. 창의성은 소통 능력과 함께 개인의 주체가 확립될 때 가능하다.
즉 내가 내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때, 내가 남과 다름을 안심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경청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능한 것이다. 개인적 표현이 중요시되는 소위 스토리텔링의 시대에 적합한 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이 묵살되는 일방적 평준화 교육의 산물인 우리로서는 부러운 능력이기도 하다.
세 번째 중요한 자질로 꼽히는 공동체 지향성은 우리 입장에서 강한 편이다. 서양의 공동체가 이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개인의 개별성을 유지한 것이라면, 우리는 운명공동체적 요소가 강하다. 태안반도의 기름피해 복구,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에서 우리의 공동체 의식은 전 세계에 감동을 준 바 있다.
요약하면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는 무엇보다 통합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은 창의성, 소통 능력, 그리고 공동체 입장에서의 문제 해결 능력이다. 여기까지 칸의 주장은 매우 타당하게 들리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은 남는다. 이 세 가지 필수적인 능력들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한데 모을 수 있을까.
여기서 목적이나 가치를 논하지 않는 서양 근대과학 전통의 한계를 본다. 창의성이나 소통, 공동체 그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다. 그것들은 더 높은 삶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라. 문제의 핵심은 목적이나 가치의 혼돈 내지 부재이지 수단이 모자라서가 아니지 않은가. 결국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를 천명하는 것이 21세기 인재들에게 던져진 최우선 과제일 것 같다. 다시금 무엇이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인지 돌아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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